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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의 에세이

용서를 강요하지 마라



1. 우리나라의 전래동화와 외국의 동화 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권선징악의 교훈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한 인물은 갖은 고충과 역경을 이겨내고 행복한 결말을 얻게 되고, 악한 인물은 잠깐의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결국 자신의 악행에 대한 응분의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제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동화의 결말은 악행을 거듭한 인물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선한 주인공이 '용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학창시절 친구, 형제, 자매와의 다툼뒤에 선생님이나 부모님께서 둘의 악수를 권한다든지 서로 미안하다며 사과하고 포옹하라는 권유를 받은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진심으로 친구와 화해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씩!씩!'거리면서 어쩔수 없이 사과하는 척, 용서하는 척 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는 친구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거나, 싸웠다고 꿍~해 있는 경우가 되면, '속이 좁다', '뒤끝이 있다' 라는 비판을 받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2. 저는 형법을 공부한 적은 없지만,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격률이 과거 수 천년동안 형법의 주요 이념이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법전으로 알려져 있는 '함무라비 법전'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가해자가 당한 피해만큼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하는 원칙이지요. 다만, 꼭 그 피해만큼 가해자에게 돌려줘야만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피해만큼 돌려줄 수 있는 권리를 피해자에게 주고, 그 피해를 돌려줄 것인지는 피해자가 선택한다는 것이죠.

 경제학 분야의 게임이론에서도 거의 흡사한 원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과 협조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가장 효율적인 최선의 전략은 매우 단순하지만 분명한 'Tit for tat' 전략입니다. 먼저, 게임을 시작할 때 상대방과 협조하는 선택을 한 후, 상대가 취한 행동을 다음번 게임 전략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즉, 상대방이 비협조하면 다음번 게임에서 비협조하고, 상대방이 협조하면 다음번 게임에서 협조하라는 것입니다.


3. 이쯤에서 저는 의심해 봅니다. 우리 사회가 용서를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잘못을 용서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순수한 의미에서 용서는 분명 긍정적인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용서를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혹은 가해자가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동화에서, 학교에서, 집에서 보고, 겪었던 일처럼 피해자가 용서함으로써 일말의 사건들은 해결됩니다. 또한 이에는 이, 눈에는 눈, Tit for tat 전략에서도 눈에는 꼭 눈으로 대응하지 않고, 다음번에 상대방이 협조하면 나도 협조하는 행태가 긍정적이며,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바겠죠.

 하지만, 우리는 보통 중요한 전제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바로 상대방 내지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4. 용서는 '피해자'가 한다.

 동화의 격률처럼 선을 권하고 악을 벌하는 (권선징악)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악을 벌하기 이전에 피해자가 납득할만한 용서가능한 가해자의 행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악이 벌을 받는 것은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행위지만, 선함이 악함에게 당한 고통을 치유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 않을까요?


5.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은 사회

 위안부 할머니들의 위안부집회가 작년 12월 14일로 1000회가 되었습니다. 할머님들의 요구는 거대한 배상금이 아닙니다. 단지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우리나라와 일본이 1965년에 체결한 '한-일 양국의 국교관계에 관한 조약(한일협정)' 을 통해 국가 간에 이미 해결된 일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저의 논리에 의하면 가해자는 '사과'하지 않았고, 피해자는 '용서'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 가까이에 존재하는 경제사범에 대한 처우에서도 비슷한 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거대한 불법을 통해 얻은 이득, 예를 들어 거대기업의 횡령, 기업간의 담합 행위들은 흔히 책임자의 징역과 해당 기업의 과징금 부과 등으로 마무리 됩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소송을 통해 집행유예로 풀려난다든지 감액되는 경우가 허다하죠. 횡령, 담합의 피해자는 누굴까요? 횡령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이고, 담합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그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입니다. 가해자인 기업이 '사과'하고, 피해자인 주주와 소비자가 '용서'한 적 있나요??


6. 저는 앞으로 누군가에게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다짐합니다. 나로 인한 피해자에게 '사과'는 하되 '용서'를 강요하지 않을 것이고, 나를 가해한 자의 '사과'가 없다면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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